안녕하세요. 친절한 부동산 선배 민성식 입니다.
퇴근 시간을 피해 성수동을 걷다 보면 이상한 감각에 빠집니다.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이는 거리. 예전 같으면 명동에서 마주쳤을 풍경인데, 이제는 성수동이 그 자리를 넘겨받은 듯합니다. 실제로 해외 관광객이 한국에서 꼭 들르는 코스로 성수동을 꼽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성수동은 2호선이 지나는 아차산로를 경계로 남과 북이 사뭇 다른 얼굴을 합니다.
연무장길이 뻗은 남쪽은 팝업스토어와 리테일 매장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국내외 방문객을 잡으려는 브랜드들의 광고 경쟁이 치열합니다. 반대로 북쪽은 한결 차분합니다. 이 조용한 구역에서 부동산투자회사와 시행사들이 오피스 빌딩을 하나둘 올리고 있고, 기존 지식산업센터와는 결이 다른 업무시설이 채워지면서 본사를 이곳으로 옮기는 기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수동 오피스 개발의 물꼬를 튼 '세일 앤 리스백'
부동산투자회사들이 성수동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무신사가 있습니다.
패션기업 무신사와 손잡고 오피스 빌딩을 개발한 뒤 임대하는 방식이 성공 모델로 자리 잡으면서부터입니다. 무신사가 직접 빌딩을 개발하고 사옥으로 장기 책임임대차를 맺으면, 자산운용사가 이를 매입하는 구조. 이른바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back)' 방식으로 지어진 성수동 오피스 빌딩이 지금도 여럿 남아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업무권역으로 몸집을 키우는 성수동에 어떤 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지 짚어보고, 이 지역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성수동으로 향하는 기업들
성수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크래프톤입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컨소시엄을 꾸려 이마트 성수점을 사들인 뒤 사옥을 짓고 있는데, 완공 목표는 2028년입니다. 크래프톤의 행보는 사옥 한 채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수동에 하나의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그림 아래 주변 부동산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고, 최근에는 마스턴이 개발 중인 성수동2가 장안타운 부지의 업무시설을 미리 사들이는 계약까지 맺었습니다.
젠틀몬스터와 탬버린즈를 거느린 아이아이컴바인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젠틀몬스터 하우스 노웨어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사옥을 완성했는데, 파격적인 외관 덕에 업무 공간이라기보다 하나의 명소로 통합니다. 사옥이 곧 랜드마크가 된 셈이니, 성수동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이름을 올릴 만합니다.
K-콘텐츠의 세계적 인기 속에 국내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들도 이 지역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업무동에 자리를 잡았고, 큐브엔터테인먼트 역시 성수동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 사옥 로비나 그 언저리에 가면, 소속 아티스트를 보러 온 외국인 팬과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소속 아티스트의 존재만으로 빌딩 자체가 관광 명소가 되는 것, 이런 진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성수동입니다.
대기업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습니다.G마켓은 오랜 본거지였던 강남파이낸스센터를 뒤로하고 성수동 오피스로 이전을 준비 중입니다.
옮겨갈 곳은 마스턴투자운용이 에이엠플러스에서 매입한 뒤 캡스톤자산운용에 다시 넘긴 신축 빌딩으로, 북성수에 위치해 있습니다. 입주 시점은 올해 하반기로 잡혀 있습니다. 현대오토에버는 삼원PFV가 성수동2가 279번지에 짓고 있는 신축 오피스 빌딩으로 들어갈 계획입니다. 여러 건물에 흩어져 있던 조직을 한 곳으로 모으는 통합 이전으로, 2027년 초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쪽에서는 르노코리아의 연구개발 조직인 르노테크놀로지코리아도 2027년 성수동에 사옥을 마련해 옮겨가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기업 계열사를 활용한 개발 프로젝트도 눈에 띕니다.
HL리츠운용은 성수동2가 243-1번지의 옛 벤츠 서비스센터 부지를 오피스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피스 개발 프로젝트 리츠로 전환할 예정인 이 부지는 2027년 착공해 2029년 6월 준공을 목표로 하며, 완공 후에는 HL그룹 계열사들이 입주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성수동에 모여드는 곳은 하나같이 트렌드에 민감한 업종이라는 점입니다. 패션, 콘텐츠, IT까지 개성 뚜렷한 기업들이 이전 소식을 이어가면서, 성수동은 색깔 강한 회사들이 집결하는 업무권역으로서의 성격을 점점 굳혀가고 있습니다.
강남과는 다른 결의 업무권역
강남권역은 지금 새 오피스 빌딩을 공급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개발할 만한 부지를 찾기 어려운 데다 토지비 부담도 크기 때문입니다. 테헤란로 리모델링 활성화 구역 지정 역시 뒤집어 보면, 그만큼 건물들이 노후했고 신규 공급이 막혀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 투자자들의 시선이 성수동으로 옮겨간 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강남과 가까우면서도 토지비는 상대적으로 낮으니, 신축 빌딩이 하나둘 올라가는 것이죠. 대형 프라임급은 아니어도 신축은 구축보다 훨씬 쾌적하기 마련이라, 더 나은 공간을 찾는 임차인들의 이동도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공장과 구두 골목이 떠오르던 옛 성수동을, 요즘 젊은 세대는 '힙한 동네'로 받아들입니다. 이 이미지는 채용 시장에서도 힘을 발휘합니다. 성장세가 가파른 패션·화장품 업계나, 창의적 발상이 생명인 IT·콘텐츠 기업에게는 '성수동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인재를 끌어당기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매력만큼 숙제도 뚜렷합니다. 가장 먼저 걸리는 건 교통입니다.
계획적으로 조성된 지역이 아니다 보니 도로 사정이 열악합니다.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역 주변은 퇴근하는 직장인과 찾아오는 방문객이 뒤섞여, 안전이 걱정될 만큼 붐빕니다. 성수역이 지상 역사인 데다 출입구마저 제한적이라, 통행 안전을 위해서는 손봐야 할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좁은 도로와 늘어나는 도보 관광객 탓에 차량 흐름도 원활하지 않고, 오피스 빌딩으로의 차량 진출입이나 주차 여건도 약점으로 지적됩니다. 빌딩 공급이 늘수록 이 문제는 나아지기보다 더 심해질 여지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성수동은 강남을 단순히 대체한다기보다, 강남이 지닌 인프라와 이미지의 일부를 흡수하면서 자기만의 색을 입혀가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비용 절감이나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로 기업들이 모였지만, 이제는 그 성공이 되레 비용 상승으로 되돌아오는 조짐도 보입니다. 팝업스토어 임대료는 물론, 새로 공급되는 오피스 빌딩의 임대료까지 꾸준히 오르는 추세니까요.
마무리하며
성수동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큰 카드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삼표레미콘 공장 부지 개발입니다.
서울숲 인근의 이 부지는 79층 주거 건물과 53층 업무복합빌딩으로 개발될 예정입니다. 2026년 착공해 계획대로라면 2032년 준공. 그때가 되면 크래프톤 사옥에 이어 성수동에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들어서는 셈입니다. 성수동의 성장 곡선이 당분간 꺾이지 않으리라 보는 이유입니다.
짧게 훑어본 이야기지만, 성수동이 업무권역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이제 이곳은 팝업의 거리라는 수식만으로는 담기지 않습니다. 패션과 엔터, 테크가 한데 모여 시너지를 빚어내는 새로운 업무권역, 성수동의 다음 장면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