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사무실은 진풍경이 펼쳐집니다. 가디건을 입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뒷자리에는 USB선풍기를 틀고 더위를 쫓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리모컨을 들고 1도를 낮추고, 30분 뒤 누군가는 슬쩍 1도를 올립니다. "에어컨 좀 줄여주세요"와 "더 세게 틀어주세요"가 같은 회의실에서 동시에 들립니다. 매년 똑같은 풍경입니다.
경영지원팀이 6월부터 9월까지 가장 많이 받는 민원이 냉방 관련이라는 건 업계에서 거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이 갈등, 단순히 "추위 잘 타는 사람과 더위 잘 타는 사람의 차이"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같은 26℃를 누구는 시원하다 하고 누구는 춥다고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같은 26℃, 다르게 느끼는 이유에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ASHRAE(미국냉난방공조학회)는 1966년부터 사무 환경의 열적 쾌적성(thermal comfort)을 연구해온 기관입니다. ASHRAE Standard 55에 따르면 인간이 느끼는 쾌적 온도는 공기 온도 하나로 결정되지 않고 여섯 가지 요인의 조합으로 결정됩니다. 바로 공기 온도, 복사 온도(주변 벽·창의 온도), 풍속, 습도, 의복량, 활동량입니다.
이 여섯 가지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같은 26℃ 설정에서도 체감 차이는 상당히 크게 벌어집니다.
첫 번째는 위치
천장형 에어컨 송풍구 바로 아래 자리와 창가 자리의 실측 온도 차이는 일반적으로 2℃ 이상 발생합니다. 송풍구 아래는 직접 바람을 맞고, 창가는 외부 복사열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복장
셔츠 한 장 차이가 약 0.5clo(의복 단열 단위)에 해당합니다. 똑같이 26℃ 환경에서 정장 풀세트를 입은 사람과 반팔 차림인 사람의 체감 온도 차이는 1.5℃ 이상 벌어집니다.
세 번째는 활동량
영업을 다녀와서 자리로 돌아온 사람과 책상에서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던 사람의 대사량은 다릅니다. 활동량이 많을수록 같은 온도가 더 덥게 느껴집니다.
마지막은 성별과 체질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교 연구진이 2015년 Nature Climate Chang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기존 사무실 표준 온도 모델은 1960년대 평균 체격의 남성 대사율을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여성의 실제 대사율을 최대 35%까지 과대평가되어있따고 합니다. 쉽게 말해 여성에게 사무실은 구조적으로 더 추운 환경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26℃로 맞춰뒀는데 왜 누구는 춥다 하고 누구는 덥다 하지?"라는 의문은 사실 잘못된 질문입니다. 체감 온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무실은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여기에 한국 오피스 환경의 특수성이 더해집니다. 평당 인구 밀도가 높고, 좁고 긴 공간을 칸막이로 나눈 구조가 많아 공기 순환이 균일하지 않습니다. 한쪽은 직접 바람이 떨어지고, 반대쪽은 정체된 공기가 머무르는 식이죠.
특히 오래된 빌딩일수록 에어컨이 한 구역을 통째로 담당하는 단일 존 방식이 많아, 한 명의 설정이 전체에 적용됩니다. 평균값으로는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구조가 매년 반복되는 셈입니다.
갈등의 본질은 온도가 아니라 통제권이다?
다수결로 풀려는 시도가 실패하는 이유
재밌는 시각으로도 한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영지원 담당자가 처음 시도하는 방법은 "다수결로 온도를 정하자"입니다. 결과는 보통 같습니다. 다수가 만족해도 소수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고, 다음 주에 다시 온도 분쟁이 벌어지죠.
코넬대 환경심리학자 Gary Evans의 연구에 따르면, 사무 환경의 스트레스는 물리적 조건 자체뿐 아니라 그 환경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같은 소음, 같은 온도라도 본인이 조절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스트레스 반응이 현저히 낮아지는 것이죠.
다시 말해, 26℃도 라는 온도 자체의 체감 온도 문제일수도 있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26℃"이기 때문에 온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수도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일본 쿨비즈 캠페인이 남긴 교훈
일본 환경성이 2005년부터 추진한 '쿨비즈(Cool Biz)' 캠페인은 이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단순히 "에어컨을 28℃로 올리자"가 아니라, 노타이·반팔 허용이라는 의복 자유와 함께 도입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환경성 공식 자료에 따르면 도입 첫해 냉방 관련 CO₂ 배출량이 약 46만 톤 감소했고, 이듬해에는 114만 톤까지 확대됐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지 온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직원에게 체감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유를 함께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더우면 옷을 벗을 수 있게 해줬더니, 사무실 온도를 올려도 불만이 나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현장에서 통하는 다섯 가지 해결법
1. 자리별 개인 환경 조정 도구 비치
무릎 담요, 미니 선풍기, 발 매트, 가디건 보관 옷걸이 같은 것들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직원이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갖는 순간 갈등 강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 입니다.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조치입니다.
윈드어드바이저 설치
천장형 에어컨 송풍구에 부착해 바람을 분산시키는 부품으로, 개당 1~2만원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내 자리만 바람 직격탄’인 사람의 민원이 사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단순한 부품 하나로 문제의 절반이 해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무실이 이 존재 자체를 모릅니다.
3. 냉방 시즌 시작 전 필터·열교환기 청소
필터가 막힌 에어컨은 같은 설정 온도에서 더 차가운 바람을 약하게 뿜습니다. 이 경우 어떤 직원은 "바람이 너무 차다"고 느끼고, 다른 직원은 "시원하지 않다"고 느끼는 모순적 상황이 생깁니다.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시점이 점검의 적기입니다.
4. 시간대별 가동 패턴 운영
점심 직후 졸음 구간(오후 1시~2시 30분)에는 1℃ 낮추고, 외근·퇴근이 늘어나는 오후 4시 30분 이후에는 1℃ 올리는 식의 시간대별 운영입니다. 평균값으로 운영하는 것보다 만족도가 훨씬 높습니다.
5. 드레스 코드 유연화
최근에는 자율복장인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정장을 입어야하는 조직도 비즈니스 캐주얼을 공식화하는 추세이죠. 비용 0원으로 가장 빠르게 도입할 수 있는 조치이기도 합니다.
길어진 여름, 길어질 다툼
기후변화로 인행 5월 말인 지금 벌써 반팔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이 길어진만큼, 조속한 조치가 없다면 다툼도 길어질 것 입니다. 빈번히 발생하는 민원을 가볍게 여기기 보다 환경 자체를 한 번 손보고 시작해보면 어떨까요.임직원의 만족도가 상승할 것 입니다.